VC가 어떤 돈을 굴리는지 이해하라
- Kyoung-Hwan Choi
- 6월 18일
- 2분 분량

창업자들이 종종 간과하는 것이 있다. VC가 투자하는 돈은 '자기 돈'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는 순간, VC가 왜 특정 방식으로 행동하고 왜 특정 스타트업에만 투자하는지 훨씬 명확하게 보인다.
VC는 보통 “벤처펀드(venture fund)”라는 형태로 외부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집한다. 이 외부 투자자를 “LP(Limited Partner, 유한책임출자자)”라고 부른다. LP는 연기금, 대기업, 금융기관, 정부기관, 패밀리오피스 등으로 구성된다.
VC는 이렇게 모은 돈을 일정 기간 동안(보통 8~10년) 굴려서 수익을 내야 하는 “운용자(General Partner, GP)”다. 쉽게 말해 VC는 LP의 돈을 받아서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수익을 만들어 돌려주는 전문적인 ‘운용인’이다. 자기 돈이 아니기에 더 철저하고 보수적인 기준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 LP들에게는 철저한 성과 압박이 존재하고, VC는 그 압박 아래에서 투자를 판단한다.
펀드는 유한하다: 시간과 수익률 목표가 있다
VC 펀드는 일반적으로 8~10년짜리 유한책임조합 형태로 구성된다. 3~4년 동안 투자하고, 마지막 3~4년 동안 회수를 목표로 한다. 회수는 M&A, IPO 등을 통해 이뤄진다. 그러므로 창업자가 투자 유치를 하려면 먼저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VC가 몇 년 차 펀드를 운용 중인지 알아야 한다. 만약 펀드가 투자 기간의 막바지라면 신규 투자 여력이 떨어질 수 있다. 반대로 신규 펀드 초기라면 활발하게 투자를 검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펀드 수익 구조를 이해하라
VC는 자신의 펀드 성과를 극대화해야 하는 압박을 받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큰 성공 가능성이 있는 회사'에 집중한다. 즉, 1,000억 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기대할 수 있는 회사에만 투자하려는 경향이 크다. 왜냐하면 펀드 수익 구조가 소수의 대박 투자에서 대부분의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창업자는 현실적인 눈높이를 가져야 한다. “나는 100억짜리 좋은 회사를 만들면 충분하다”는 마인드로 접근하면 VC와의 궁합이 맞지 않는다. VC는 결국 LP에게 성과를 보여줘야 하고, 펀드 목표 수익률(보통 연 15~20% 이상)을 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돈의 성격까지 본다면 전략이 달라진다
VC가 어떤 돈을 굴리고 있는지, 그 돈의 성격과 구조가 어떠한 지 이해하는 것은 창업자에게 매우 실용적인 정보다. 더 깊이 들어가면 LP 구성에 따라 펀드의 성향도 달라진다. VC의 투자 전략이 LP의 기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연기금 출자가 많은 펀드는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을 선호한다. 반면 패밀리 오피스 비중이 높다면 모험적인 투자도 가능하다. 따라서 VC가 창업자에게 이것저것 많은 정보를 요구하거나 보수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것은 이런 LP 요구사항과 내부 리스크 관리 기준 때문일 때가 많다. 창업자는 이 구조를 이해하면 VC의 질문이나 피드백에 대해 덜 감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고, 전략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또한, 각 펀드는 투자 전략과 성격이 다르다. 어떤 펀드는 초기 스타트업(Seed, Pre-Series A)에 집중하고, 어떤 펀드는 성장 단계(Series B 이후)에 집중한다. 어떤 펀드는 특정 산업 군(헬스케어, AI, 핀테크 등)에 특화되어 있다.
VC를 이해하면 판이 보인다
투자 유치는 협상이 아니다.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파트너십의 여정이다”. VC의 투자 판단과 행동의 근저에 있는 펀드 구조와 LP의 성격을 이해하면, 더 전략적이고 효과적인 투자 유치 활동이 가능해진다. VC와의 첫 만남에서 단순히 “우리 사업이 이렇게 좋다”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그 VC의 펀드 상황과 투자 전략까지 고려해 접근하라. 그 한 걸음 차이가 투자 성사 여부를 가를 수 있다.
“그쪽은 왜 그렇게 까다롭게 물어보세요?” 얼마 전 시리즈 A 투자 유치를 준비 중인 한 창업자가 나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가 만난 VC 파트너는 수십 가지 자료를 요구했고, 계속해서 ‘시장 크기’, ‘향후 엑싯 가능성’을 질문했다고 한다. 창업자는 살짝 억울한 마음이었다. “우린 벌써 연 매출 20억 원이 넘는데요.”
이럴 때 나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VC는 자기 돈이 아니라 남의 돈을 굴리는 사람들입니다.”
이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는 순간 VC의 시선과 행동이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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